미국은 정말 걸프를 지킬 수 있나? 이란 합의가 드러낸 동맹의 민낯

"우리 없으면 2주도 못 버틴다" — 8년 전 트럼프의 말이 예언이 된 날

호르무즈는 열렸는데 걸프의 밤은 왜 길어지는가

방패인가 청구서인가 — 트럼프의 이란 합의, 걸프가 '재앙적 분수령'이라 부르는 이유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국왕 폐하, 우리가 없으면 2주도 못 버팁니다. 군사비는 직접 내셔야 합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두고 뱉은 말이다. 걸프의 지도자들이 반세기 동안 안보의 주춧돌로 여겨 온 동맹을, 그는 계산서 한 장으로 환산했다. 그때만 해도 걸프의 궁정은 그 문장을 실언으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리야드와 아부다비와 도하의 대리석 회랑에서 그 말은 예언처럼 되읽힌다. 방패인 줄 알았던 손이, 실은 청구서를 내밀고 있었다.

 

걸프 아랍 국가들에 미국은 오래도록 마지막 보험이었다. 유전과 항구, 왕가의 안녕을 지켜 줄 방패였다. 그 믿음에 처음 금이 간 것은 2019년이다. 사우디의 아브카이크 정유 시설이 공격받아 원유 생산의 절반이 멈췄고, 세계 유가가 치솟았다. 워싱턴은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고도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걸프는 그 침묵을 잊지 않는다. 보호란 서약이 아니라 흥정의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그날 처음 배웠다. 그리고 2025년, 걸프가 미국 경제에 수조 달러를 안기겠다고 약속하자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의 첫 해외 순방지로 이 지역을 골랐다. 도하에서 그는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걸프는 안도했다. 그러나 그 안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은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을 때렸다. 이란의 최고지도자가 그 공격에 목숨을 잃었고, 테헤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걸어 잠근 채 걸프 전역으로 보복의 불길을 던졌다. 세계 원유의 5분의 1이 지나던 뱃길이 멈췄고,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 쿠웨이트가 그 불길을 정면으로 맞았다. 백 일이 넘는 전쟁 끝에 6월 17일, 트럼프와 이란 대통령 페제시키안은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해협은 다시 열렸다. 트럼프는 통항을 영구 무료로 개방한다며 이를 자신의 승리로 자축했고, 세계 증시는 치솟았다. 그러나 걸프의 궁전은 반대로 어두워졌다. 합의가 호르무즈 통항 감독의 한 축을 이란에 넘겼기 때문이다. 

 

걸프의 석유는 이제 테헤란의 눈길 아래 바다를 건너야 한다. 각서에는 최종 합의 뒤 30일 내 미군 철수 조항과 3천억 달러 규모의 이란 재건 기금이 담겼고, 그 청구서의 끝은 걸프를 향한다. 사우디는 세부 내용을 모른다며 발을 뺐고, 카타르는 서명 없이 관심만 내비쳤다. 이란의 미사일과 대리 무장 세력은 합의문 어디에도 없다. 정작 걸프가 핵보다 급하게 여기는 위협이 통째로 빠진 것이다. 6월 하순 스위스에서 이어진 후속 협상은 최종 합의로 가는 로드맵에 이르렀다. JD 밴스 부통령과 이란 의회 의장 갈리바프가 마주 앉아 호르무즈 소통 창구와 레바논 충돌 방지 기구를 세웠으나, 걸프의 자리는 그 탁자에 없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이번 주 아부다비와 쿠웨이트를 밟았다. 미국은 오랜 동맹의 안보를 해치지 않겠다고 그는 거듭 다짐했다. 다짐은 매끄러웠으나, 마주 앉은 이들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국제전략연구소의 하산 알하산은 이 전쟁을 지역 질서의 재앙적 분수령이라 불렀다. 미국의 신뢰가 크게 무너진 자리에서 이 합의가 태어났다고 그는 진단한다. 불가침 조약만으로는 이란의 셈법을 바꾸지 못하며, 걸프가 먼저 믿을 만한 억지력을 세워야 한다는 경고도 그는 덧붙였다.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유라시아그룹의 피라스 막사드는 더 서늘하다. 미국이 믿을 만한 전략적 동맹이라는 믿음 자체가 걸프에서 의심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걸프 고위 외교관은 이란이 처음부터 걸프를 겨냥한 설계도를 쥐고 있었다고 CNN에 털어놓았다. 걸프의 관영 지면도 대립의 언어를 넘어선다. 사우디의 아샤르크 알아우사트는 외교가 이란의 태도를 정말 누그러뜨릴 수 있는지 물었고, 논객 압둘라흐만 알라셰드는 목표가 이란을 영원히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바꿔 안정된 질서로 끌어들이는 데 있다고 적었다. 

 

그래서 걸프는 조용히 움직인다. 무기 조달처를 흩고 튀르키예를 새 공급자로 저울질하며, 이란과의 불가침을 만지작거린다. 나쁜 합의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계산, 그것이 지금 걸프가 붙든 유일한 위안이다. 그러나 위안은 방패가 아니다. 믿었던 방패가 계산기로 바뀌는 순간, 나라도 사람도 같은 얼굴을 한다. 배신감보다 먼저 오는 것은 외로움이다. 수십 년을 바친 우정이 한 장의 각서 앞에서 숫자로 환산되는 경험, 그것은 국가의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일이다. 

 

걸프의 왕들은 이제 안다. 남의 힘에 얹은 평화는 그 힘의 기분을 따라 흔들린다는 것을. 리야드의 밤이 길어진다. 그 긴 밤에 걸프가 삼키는 물음은, 실은 우리 각자의 가슴에도 박혀 있다. 무엇을, 아니 누구를 방패 삼아 나는 오늘을 견디고 있는가.

작성 2026.07.06 01:09 수정 2026.07.06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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